작업 사이를 제약 없이 다니며 자세히 살피면, 엷은 장막이나 얼굴 없는 신체를 감싼 천이 할머니들의 스타킹 소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얼굴 없는 신체는 패션 쇼윈도에서 보는 젊고 날씬한 마네킹이 아니라, 몽실몽실한 솜들이 채워진 부드럽고 느슨한 몸이다.
어디에선가 나이가 지극한 여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수줍지만 솔직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얼굴 없는 몸뚱이들과 장막들이 있지만 기괴하거나 어둡지 않은, 편안하고 따뜻하다.
▲‘오래된 청춘’ 전시 전경, 우리미술관, 2018 (웁쓰양 제공)
웁쓰양 작가는 거대 자본과 시스템이 지배하는 도시 공간에서 ‘도시놀이 개발 프로젝트’들 한다. : 재개발 지구에서 물총 놀이를 하는 ‘페허의 콜렉션, 2013’, 번아웃된 도시인에게 멍때림의 유희를 안겨주는 ‘멍때리기 대회, 2014-’, 옷 입기의 주체적 행위를 위한 ‘패셔니스타워즈, 2015’, 영종도 갯벌에서 새로운 부족의 문화를 수행하는 ‘부족의 탄생, 2018’.
이러한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작업에 비해, 우리미술관의 전시 ‘오래된 청춘’은 조금 의외일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인천역 뒤편 새우젓골 어르신들을 인터뷰했던 ‘북성동 새우젓골 이야기’에서 근대사 궤적 속에서 남성, 여성으로서의 개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2018년 우리미술관의 작가 작업실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오랜 동네 어르신들의 개인사를 넘어, 젊음과 늙음에 대한 작업을 준비했다.
작가는 여자 어르신들, 즉 할머니들을 인터뷰했는데, 늙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과 상품성이 떨어지고 초라하고 슬픈 것으로 여겨지는 지점에서 늙거나 아픈 육체를 넘어, 개인의 욕망과 능동적 삶을 긍정하고자 했다.
할머니들의 신체를 실측하고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스킨십이 생기면서 친밀해졌고, 늙은 신체를 기괴하거나 추하지 않고, 밝고 따뜻한 느낌을 가진 신체를 표현하기 위해 솜과 스타킹 재료를 사용했다.
▲소설< 괭이부리말의 아이들> 삽화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
우리미술관과 레지던시가 있는 화도진로 186번길 일대는 예전에 만석동으로 불리던 괭이부리마을이다. 화도진 앞바다에 있던 고양이섬(묘도)에서 ‘괭이부리’를 사용한 마을은 일제강점기 매립공사 이후 공장 노동자의 숙소로, 한국전쟁 직후 쪽방촌으로 만들어졌다.
김중미 작가의 <괭이마을 아이들>의 배경이기도 하고,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비관주의자인 지영이 사는 곳도 만석동이다. 작가는 달동네로 상징화된 괭이부리 마을에서 여성 어르신들의 구술사에서 드러나는 근현대사 속 개인의 구성보다 인간으로서 정서와 욕망에 초점을 두었다.